[르포] 갈릴레이의 발자취를 따라간 이탈리아 (4) 로마의 성당과 그의 선고

마지막 도시 로마

우리는 여행의 종착지,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로마는 그 방대한 역사만큼이나 거대한 유적들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판테온처럼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곳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유명한 유적들 사이사이마다 과거의 흔적이 무심히 펼쳐져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벽돌더미 속에서 고대의 돌기둥이 불쑥 드러나고,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폐허와 안내판이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로마는 과거와 현재가 얽힌 도시였습니다.

그 쟁쟁한 유적들 사이에 작은 광장을 품은 성당 하나가 있었습니다. 앞마당에는 코끼리 모양의 조각상 위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고, 성당 입구는 평평하고 장식 하나 없는 담백한 모습이었습니다. 웅장한 콜로세움이나 화려한 판테온을 보고 난 뒤라면, 이 성당은 오히려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갈릴레이가 로마로 오게 된 이유이자, 그가 피렌체 근교 아르체트리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생을 마감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장소였습니다. 이곳은 바로 로마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Santa Maria sopra Minerva) 입니다.

로마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부른다.

1614년 12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설교단에서 도미니코회 수사 토마소 카치니는 공개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이단이라 규탄했습니다. 이 사건은 곧 로마 교황청으로 번졌고, 1616년 2월 24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태양이 중심이라는 ‘가설’을 비난했습니다. 같은 해 3월 5일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포함한 모든 연구가 금지 명령을 받고,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갈릴레이에게 코페르니쿠스 가설 포기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623년, 새로운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선출되면서 갈릴레이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과학과 신앙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교황의 지적 관심과 관용적인 태도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후 1632년, 갈릴레이는 ‘두 개의 주요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를 출판했습니다. 지구가 도는 이유를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 이 책은 학문적으로 큰 성취였지만, 동시에 교황청의 권위를 정면으로 흔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책은 즉시 금서로 지정되었고, 갈릴레이에게는 로마에 와서 재판을 받으라는 소환장이 도착했습니다.

1633년 1월,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소의 명령에 따라 로마로 향했습니다. 2월 13일 로마에 도착한 그는 빈첸초 마쿨라니 다 피렌추올라 신부가 수석 재판관으로 임명된 재판에 출석했습니다. 그는 죄수복을 입지 않았고, 재판 기간 동안 비교적 좋은 방에 머물 수 있었지만, 사실상 구금 상태였습니다. 4월 12일 첫 심문이 시작된 뒤 한 달 동안 세 차례의 재판이 이어졌습니다.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내부 모습

결국 6월 22일, 교회는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선언하고, 판단하고, 선언하노니, 그대 갈릴레오가 이 거룩한 성직에 의해 이단으로, 즉 태양이 세계의 중심이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지 않고, 지구가 움직이며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거짓이며 거룩한 성경에 어긋나는 교리를 믿고 지지했다는 의심을 강하게 제기했노라.”

그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혐의는 벗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이후, 갈릴레이는 피렌체 근교의 아르체트리 자택으로 돌아와 가택연금 상태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가 입을 다물어야 했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가 남긴 말은 여전히 진리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성당에서 나와 작은 광장에 선 오벨리스크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집트 시대의 석주 위에 코끼리가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였는데, 당시 이 조각을 설계한 인물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제자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였습니다. 종교재판과 예술, 신앙과 학문이 모두 한 자리에 얽혀 있는 이곳, 로마는 인간의 신념과 갈등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성당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지 머릿속으로 구상했습니다.. 이 도시가 보여주는 찬란한 유적들만큼이나 이 조용한 광장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400년 전, 한 과학자가 이곳에서 세상의 중심을 바꿔 놓은 진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증명한 우주는 여전히 돌고 있고, 우리가 피렌체에서 보았던 그 별빛은, 대한민국에서 보았던 밤하늘은 지금도 로마의 하늘을 지나고 있을 겁니다.

참조:
1. 갈릴레이 박물관 (https://brunelleschi.imss.fi.it/itineraries/multimedia/GalileosTrial.html)
2. 히스토리 “갈릴레오 이단으로 재판받다.” (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april-12/galileo-is-accused-of-heresy)
3. 옥스퍼드 대학 (https://blog.oup.com/2012/02/galileo-arrives-in-rome-for-trial-before-inquisition/)

‣ 작성 : 별바다 신문 이봄 주임연구원 ( spring@astrocamp.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