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종교 기념일? 과거엔 ‘천문학적 축제’였다.

크리스마스 마켓 /freepik, syda_productions

새해 첫날은 인간의 약속, 크리스마스는 태양의 귀환…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

거리마다 캐롤이 울려 퍼지는 12월입니다. 연말연시를 맞아 달력을 보며 다가오는 휴일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여기서 천문학적인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다음 중 ‘천문학(자연의 흐름)’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날은 언제일까요?

  1. 크리스마스
  2. 새해 (1월 1일)
  3. 설날
  4. 추석
  5. 할로윈

정답이 보이시나요? 놀랍게도 정답은 2번, 새해(1월 1일)입니다.

설날과 추석, 그리고 할로윈의 비밀

설날과 추석은 음력 명절입니다. ‘달(Moon)’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음력 달력을 이용했기에 천문학과 직결됩니다. 그렇다면 서양의 축제인 할로윈은 어떨까요? 할로윈은 우리의 24절기 중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기 시작함)’ 즈음과 겹칩니다. 해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려진다고 믿었던 고대 켈트족의 전통에서 유래했죠. 즉, 계절의 변화라는 천문 현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매년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1월 1일은 천문학적 현상과는 무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50년 전, 로마의 통치자 율리우스가 양력 달력을 만들며 “이날을 새해 첫날로 하자”라고 선언한, 지극히 인간적인 ‘약속’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예수 탄생일인가 동지인가?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종교적인 날인데, 왜 천문학과 관련이 있죠?”

흥미롭게도 천문학자들은 크리스마스를 ‘동지(冬至) 축제의 연장선’으로 해석합니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지구가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낮은 길어지고 밤은 짧아지기 시작합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태양은 곧 생명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지는 ‘태양의 부활’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기점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동지에 팥죽을 먹으며 액운을 쫓은 것도, 북유럽에서 낮이 가장 긴 하지를 기념한 것도 모두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생존 본능과 연결됩니다.

지구의 태양 공전 궤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여름, 가을, 겨울, 봄이다. /어린이천문대

12월 25일의 미스터리, 태양의 부활과 만나다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보면 그 연결고리는 더 명확해집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인 기원전부터, 12월 말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큰 축제 기간이었습니다. 로마에는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사투르날리아’ 축제가, 페르시아 미트라교에는 태양신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가 있었죠.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후 4세기경입니다. 예수가 태어난 지 3~400년이 지난 뒤였죠. 당시에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기에,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들이 전 세계로 퍼지고 기념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천문학계와 역사학계는 초기 기독교가 ‘태양 축제일(동지 무렵)’을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에, 태양이 다시 길어지며 빛이 돌아오는 동지만큼 적절한 시기는 없었을 테니까요.

지구의 팽이는 여전히 돌고 있다

사실 기원전의 동지는 지금의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현재 동지가 12월 21일~22일경으로 앞당겨진 이유는 지구의 자전축이 팽이처럼 회전하는 ‘세차운동’ 때문입니다. 비록 날짜는 며칠 차이가 나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 년 중 가장 긴 밤을 지나고 있는 지구 위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트리 장식의 불빛을 보며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좋지만, 머리 위 우주를 한번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기울어진 지구 덕분에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 태양의 시간, 그 ‘우주적 축제’를 함께 즐기면서 말입니다.

‣ 작성 : 별바다 신문 이봄 주임연구원 ( spring@astrocamp.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