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운틴 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 블랙히스에서 별을 보며 첫날 밤을 보낸 우리는 모두 늦은 아침까지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왔지만, 누구의 얼굴에서도 지친 기색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더 깊은 밤하늘을 만나러 간다는 기대감이 힘을 넣어 주었기 때문일까요?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워럼벙글 국립공원(Warrumbungle National Park)’입니다. 블랙히스에서 약 400km나 멀리 떨어진 이곳은 전 지구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어두운 밤하늘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얼마나 어두운지 무려 ‘국제 밤하늘 공원(International Dark Sky Park)’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별빛은 반딧불이처럼 연약하기에 미약한 가로등 불빛 하나에도 쉽게 숨어버립니다. 때문에 맨눈으로 수많은 별을 관측하기 위해선 ‘좋은 시력’이 아닌 ‘좋은 환경’이 받혀줘야 합니다.
좋은 밤 환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관점과 별의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작은 땅 안에 환한 대도시가 무려 10개 이상이 있고, 그 사이사이를 환한 가로등이 비추는 고속도로가 연결합니다. 아무리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이웃 도시의 불빛이 하늘을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기에 아주 안전하고 좋은 환경입니다. 하지만 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이 밤을 안전하게 만드는 사이에 모두 가로등 불빛 뒤로 사라졌습니다.
거대한 호주 대륙에서 사람들은 해변가에 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밝은 대도시 불빛도 해안 선을 따라 빛납니다. 빛의 공해가 닿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내륙 깊숙한 곳.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반나절을 꼬박 운전해 들어가야 했습니다.

서쪽으로. 해와 바다를 등지고 달립니다. 창밖에는 도시의 풍경은 커녕 사람의 흔적조차 간간히 보일 뿐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드넓은 들판과 소, 양, 말 뿐이었습니다. 아주 드물게 캥거루가 보일 때면 우리는 차를 멈추고 난생 처음 보는 생명체를 관찰했습니다. 짧은 팔에 두꺼운 다리가 붙어있는 모습이 마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티라노사우루스는 저렇게 콩콩 뛰어다니지 못했겠지만요. 신기하게 생긴 생명체는 기나긴 로드트립의 단비와도 같은 생명체였습니다. 그런 캥거루마저 지루해질 때가 되어서야 ‘워럼벙글(Warrumbungle)’이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어느덧 태양은 우리 머리 위를 지나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할 때가 되었을 때는 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국제 밤하늘 공원(International Dark Sky Park)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암흑 속이었습니다. 숙소조차 제대로 찾을 수 없어 수차례 차를 멈추고 돌려야 했습니다. 거대한 망원경이 마당에 위치한 곳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으나, 그 망원경을 비출 빛이 없었습니다. 빛이 없는 곳을 찾아 왔건만 빛이 있어야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법 모순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엉뚱한 집을 찾아 들어가 집주인에게 길을 물은 끝에 우리는 제대로 된 집을 찾을 수 있었고, 차에서 내리는 그 즉시 ‘아 이곳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주 한 복판에 현관문이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깜깜한 동네, 그리고 집 주인 분께서 꺼내 든 천문 관측 장비들. 남반구 밤하늘이 궁금해 호주를 찾은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 같았습니다.

거꾸로 누운 오리온이 우리를 반기고, 마젤란 은하들이 하늘을 얼룩지게 만드는 밤하늘.
북반구에서 10년 가까이 별을 보며 살다 보니, 어느 계절이던 어느 시간이던 하늘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읽을 수 있다 뿐일까요. 모든 페이지를 달달 외운 책처럼, 날짜와 시간만 안다면 어디에 어떤 별이 뜨는지 훤히 그려집니다. 그래서 ‘낯선’과 ‘하늘’은 같이 쓰지 않은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남반구에 오니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오랜만에 하늘 까막눈이 되었습니다.
선명히 새겨진 십자가 모양의 ‘남십자자리’와 남십자자리를 감싸고있는 거대한 ‘센타우루스자리’의 위엄. 그리고 하늘 한 쪽 구석에 흐릿하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대마젤란 은하’와 ‘소마젤란 은하’의 신비로움. 지구반대편에 온 것 만으로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사실 남반구의 밤하늘도 남쪽 하늘이 아닌 이상, 북쪽 하늘은 이미 알고 있는 별자리가 뜹니다. 다만 남쪽에서 올려다 보기 때문에 방향이 뒤집어져 있을 뿐이지요. ‘이미 알고있는 별자리를 뒤집어서 본다고 뭐 특별하겠어?’라며 자만하던 저는 책을 거꾸로 들고 읽는 것처럼 힘겹게 별자리들을 읽어나갔습니다.
숙소 주인부부가 제공해준 거대한 돕소니안 망원경은 남반구 하늘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맨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 흐릿한 천체가 있어 망원경을 가져다 댔을 때, 그것이 아름답고 거대한 구상성단 NGC104였을 때. 마치 천체를 새로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습니다.


가을이 찾아온 호주의 밤은 그리 온화하지 않았습니다. 추위에 못이겨 실내와 관측소를 오가며 열심히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낮 동안 밤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며칠은 밤하늘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에 처음 불을 붙일 때와 같았습니다. 정말,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