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쏟아질 듯한 은하수와 낯선 별자리 아래 누워 별을 헤던 밤을 지나, 가로등 불빛이 별을 지워버린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야생 캥거루가 뛰놀고 해가 지면 완벽한 적막에 잠기던 시골에서, 해가 저물수록 한층 더 화려하고 소란스러워지는 대도시로의 귀환이었습니다. 며칠 전 우리는 서울의 두 배에 달하는 이 거대한 도시를 뒤로한 채, 우리는 오직 밤하늘만을 좇아 블루마운틴으로, 그리고 워럼벙글 국립공원의 깊은 어둠 속으로 숨 가쁘게 달려갔었습니다.
마침내 밤하늘 관측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시드니에서 며칠간의 도심 관광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시를 즐기며 호주 여행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유명한 맛집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문득 묘한 위화감이 스쳤습니다. 화려한 빌딩 숲과 불이 꺼지지 않는 밤의 도시에 발을 딛는 순간, 마치 호주라는 나라를 떠나온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호주의 진짜 얼굴은 밤에도 빛나는 오페라 하우스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마주했던 뒤집힌 별자리들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던 은하수, 그 한켠에서 뿌옇게 자리한 마젤란 은하, 그리고 선명하게 선을 그리던 남십자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소리와 빛이 가득한 도시는 세계 어디나 비슷하지만, 빛을 걷어낸 밤에서 목격한 남반구의 새로운 밤하늘은 ‘호주’라는 곳의 깊은 인상을 만들어 준 곳이었습니다.


다만 밤하늘만 그리워하다 전 지구인이 찾아오는 도시 ‘시드니’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강변을 달리며 사람 구경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도 구매했습니다. 다만 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도시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일행 중 한 사람이 숙소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금 시드니 천문대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저와 몇몇 사람들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뻗은 제 팔을 못 볼까 어깨가 빠지도록 높게 들었습니다. 시드니 천문대가 위치 한 옵저버토리 힐(천문대 언덕)은 노을 명소로도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별 만큼 노을 보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사랑하는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열심히 언덕을 걸어 올라갔더니 이미 잔디밭 가득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습니다. 땅이 해를 가리려면 아직 한참은 남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호주 국립 시드니 천문대를 먼저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시드니 천문대는 투어를 신청 시 유료지만 실내 전시물 관람은 무료로 진행 가능합니다.



천문대 내부에는 2025 남반구 천체사진대회 수상작품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주처럼 어두운 내부에 별처럼 빛나는 천체 사진들이 아름다워 몇 바퀴나 돌며 사진을 감상했습니다.
전시물 중 눈에 띄는 것은 태양계 천체들의 궤도를 나타낸 모형이였습니다. 18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이 모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황금색 공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태양계의 중심, 태양입니다. 태양에 가까운 두 개의 흰 공은 수성과 금성입니다. 그 뒤에 거대한 지구본과 달이 위치합니다. 그 뒤로 가까운 순서로 화성, 목성, 고리가 있는 토성과 천왕성이 있습니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해왕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해왕성은 1846년 발견되었습니다. 즉, 이 모형이 제작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태양계의 끝은 천왕성이었던 셈입니다.
천왕성과 해왕성이 뒤늦게 태양계 가족으로 합류했다는 사실은 지식으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여 년 전 과학자들의 우주관이 고스란히 담긴 모형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노을까지 보고 언덕을 돌아 내려오는 길. 환하게 보름달이 하늘을 밝혔습니다. 비록 가로등과 겨뤄 이길 수 없었지만 호주가 아닌 것 같다 느꼈던 시드니에서도 보름달의 모습은 워럼벙글과 똑같이 떴습니다. 토끼 귀가 바로 선 모습이 ‘아 내가 여전히 남반구에 있구나’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호주의 여행은 밝은 도시에서 밝은 달과 함께 마무리 되었습니다. 언젠가 거꾸로 뒤집힌 밤하늘을 보러 다시 지구 반대편으로 내려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