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착한 베네치아의 첫 인상은 좁은 골목 사이로 물길이 흐르는 독특한 풍경이었습니다.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대신 뱃길을 달리는 곤돌라와 수상버스, 횡단보도 대신 다리가 놓인 모습이 낯설고도 아름다웠습니다. 오래된 건물과 웅장한 성당,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400년 전 갈릴레이가 살아가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든 손과 보트의 탈탈거리는 엔진 소리를 빼면 말입니다.
숙소는 나름 중심부에 있었지만 가까운 수상버스 정류소에는 우리 일행을 포함해 겨우 몇 명만이 내렸습니다. 캐리어가 덜컹거리는 돌길을 지나 조용한 골목에 안 숙소에 들어서니, 도시가 생각보다 분주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세계적 관광지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좁은 골목 풍경은 우리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잠시 이 도시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기분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거리로 바로 나서기보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 주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첫날을 시작했습니다.

갈릴레이의 호기심을 건들인 네덜란드의 장난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베네치아 공국의 파도바 대학에서 10년 이상 교수로 재직하며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습니다. 그 무렵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감 취급을 받았었습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의 설계도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원리를 듣고 직접 제작에 나섰습니다. 당시 베네치아 근처 부라노 섬은 유리 공예로 유명했기에, 정밀한 렌즈 제작에는 지역의 유리 기술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수차례 개량 끝에 당시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약 8배율의 망원경을 완성했습니다.

망원경을 모두에게 선보이다.
1609년 8월 21일, 갈릴레이는 두칼레 궁전의 고위 인사들을 모아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을 올랐습니다. 그의 손에는 그가 만든 망원경이 들려있었습니다. 거대한 종이 있는 탑의 꼭대기 위에서는 베네치아의 풍경을 저 멀리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아득히 먼 곳의 배를 맞췄습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먼 바다의 돛대와 깃발이 망원경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나자, 사람들은 큰 충격과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시연을 통해 갈릴레이는 단숨에 명성을 얻었고, 파도바 대학에서 평생 교수직과 급여 인상까지 보장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피렌체로 돌아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본격적인 천문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갈릴레이는 그의 망원경으로 남들은 볼 수 없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달은 매끄러운 구체가 아닌 울퉁불퉁하고 거친 돌덩어리였습니다. 토성은 주위에는 작은 고리가 달려있다는 것과, 은하수 속에는 수천 개의 별들이 모여있다는 것도 그의 망원경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갈릴레이가 밤하늘에서 찾은 것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목성입니다. 목성의 주변에는 마치 지구 주위를 달이 도는 것처럼 네 개의 별이 목성 주위를 돌고 있었습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 생각했던 400년 전의 세상에서 목성이 중심이 된 네 개의 별은 세상을 놀래킬 발견이었습니다.

그를 따라 올라간 종탑 위에서
우리는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시연했던 산마르코 광장의 종탑을 직접 찾았습니다. 광장 한 켠의 종탑은 홀로 하늘을 가로질러 우뚝 서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유럽의 다른 유명 전망대와는 달리 엘리베이터가 모든 관광객들에게 제공되어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현대 기술로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종탑의 꼭대기에 올라서니 문득 그 시절의 갈릴레이는 두 발로 직접 계단을 올랐어야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망원경을 들고, 무슨 생각을 하며 종탑의 계단을 올랐을까요. 요즘의 우리처럼 긴장하며 발표 대본을 속으로 열심히 되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를 기념하듯 혹은 관광지 전망대가 으레 그렇듯 밖을 바라보는 창문마다 쌍안경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관광객답게 쌍안경에 눈을 대고 베네치아의 풍경을 둘러봤습니다. 400년전의 갈릴레이 망원경보다 훨씬 좋은 성능을 가진 쌍안경으로 쉽게 저 먼 바다의 건물과 선박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망원경이 무언지 아는 심지어 아주 가까이서 자주 사용하는 우리도 이렇게 감동적인데, 17세기의 사람들은 망원경을 통해 본 베네치아를 보며 어떤 감상을 남겼을까요. 그리고 그들 앞에 선 갈릴레이는 어떤 자부심과 떨림을 느꼈을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종탑 위에는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시연했던 장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또 시연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석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새겨진 말은 그저 사진 속에 담겨져 여행이 끝난 후에나 번역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1609년 8월 21일, 이곳에서
망원경을 통해 인간의 지평을 넓히다.
베네치아 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도시를 본 것이 아니라, 과학사의 중요한 순간이 태어난 현장을 직접 밟아본 경험이었습니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인류가 우주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었고, 우리는 그 여정을 잠시 따라가 봤을 뿐입니다. 400년 전 그가 넓힌 우주는 우리가 지나온 길이며, 지금도 새로운 발견은 그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 작성 : 별바다 신문 이봄 주임연구원 ( spring@astrocamp.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