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피렌체
피렌체는 갈릴레이의 ‘집’입니다.
그는 피사에서 태어났지만 피렌체에서 자랐고, 피사에서 공부했지만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다시 피렌체를 떠나 피사와 베네치아에서 교수직을 지낸 그는 그곳에서 망원경을 개량하고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발간하며 과학사의 중요한 연구 성과를 남겼습니다. 이 업적을 통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명성과 지위를 갖춘 천문학자가 된 그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옵니다. 로마를 오가며 종교재판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장소로는 피렌체 외곽의 작은 마을 아르체트리를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은 태어난 도시 피사가 아니라, 일상을 함께한 피렌체였을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여러 이유로 피렌체를 떠나야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피렌체는 늘 돌아올 집이었습니다.

우리가 찾은 피렌체는 누군가의 집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관광 도시였습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무렵, 두오모 성당 앞은 도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들의 눈과 귀와 지갑을 사로잡으려는 거리 공연 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모두 이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외부인들이었고,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갈릴레이 박물관

피렌체에는 세계 최대의 갈릴레이 박물관이 있습니다. 골목 사이 무심하게 걸린 ‘Museo Galileo(갈릴레오 박물관)’ 현수막은 소박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세 층 규모의 알찬 전시 공간이 펼쳐집니다. 물론 우피치 미술관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갈릴레이와 메디치, 그리고 과학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갈릴레이가 사용했던 망원경이나, 그가 천체를 보고 따라 그린 스케치, 당시 제작된 지구본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갈릴레이는 천문학뿐 아니라 수학·물리학 실험에도 몰두했기에, 다양한 실험 도구와 그 사용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이 박물관의 묘미입니다. 하지만 단연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전시품은 ‘갈릴레이의 손가락’입니다.
갈릴레이는 1642년 사망한 뒤, 교회의 눈 밖에 난 지동설 옹호자였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무덤조차 받지 못한 채 피렌체의 성 코시모와 성 다미아노 예배당 근처의 작은 구역에 비석 없이 매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의 주장에 옮았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위상도 회복되었습니다. 결국 1737년, 갈릴레이는 산타 크로체 성당 내의 명예로운 묘소로 이장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의 신체 일부가 분실되었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그의 엄지·검지·중지 세 손가락과 치아를 가져갔는데, 이 손가락들은 천체 관측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징적인 부위였습니다. 흩어진 부위들은 세월 속 자취를 감추었다가, 2009년 발견되어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이곳 갈릴레이 박물관에서는 오른손 중지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피렌체 여행을 노을로 마무리하며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피렌체의 거리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400년 전 갈릴레이도 이 강가에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을 겁니다. 진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그의 단단한 눈동자가 바라보았던 석양, 우리 역시 같은 하늘 아래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피렌체는 갈릴레이에게 돌아올 집이었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과학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한 인간으로서의 갈릴레이를 마주할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 작성 : 별바다 신문 이봄 주임연구원 ( spring@astrocamp.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