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드디어 남반구로 떠났습니다.
자그마치 6년을 기다린 여정입니다.
2020년, 설렘을 안고 계획했던 호주 여행은 코로나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며 엉뚱한 목적지들로 바뀌곤 했습니다. 은하수를 보러 하와이 마우나케아로 향했고, 그다음 해에는 개기일식을 보러 텍사스와 아칸소주로, 또 그다음 해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발자취를 쫓아 이탈리아로 향하면서 말이죠. 지구를 동에서 서로 몇 바퀴나 돌던 우리는 결국 2026년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반구행 티켓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호주행이 확정된 후, 여행의 설렘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10여 년간 매일 밤하늘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온 천문대 선생님으로서, 남반구로 향한다는 사실은 은근한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남쪽의 하늘은 제게도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녔다 자부해 왔지만, 지구라는 팽이 위쪽에서만 맴돌았을 뿐, 팽이 아래쪽의 세상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남쪽 끝에 뜨는 전갈자리, 그 아래에는 과연 어떤 밤하늘이 펼쳐져 있을까요? 하늘이 뒤집히는 경험을 앞두고, 별내어린이천문대와 구리어린이천문대 선생님들은 가상 밤하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스텔라리움’을 켜고 남반구 하늘을 예습하며 긴장 섞인 설렘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생님 여섯 명은 아침 일찍 시드니 국제공항에 발을 디뎠습니다. 호주의 대표적인 특징은 한국과 계절이 반대라는 점입니다. 봄에 떠나 가을을 만난 여행이라 기온 변화가 크지 않아 계절의 이동이 단번에 체감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봄바람 같은 공기 속에서도 완연한 빛깔로 지고 있는 낙엽들이 이곳이 가을이 맞다고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이 넘는 여정이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지만, 우리는 지체 없이 시드니를 등지고 서쪽으로 100km를 달렸습니다. 우리에게 시드니는 그저 비행기가 내리는 도시일 뿐이었습니다. 진짜 목적지는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대도시의 불빛 속에선 만날 수 없는 캥거루, 아니 은하수와 별자리들이었으니까요.

첫 번째 목적지는 블루마운틴 위에 위치한 ‘블랙히스’라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상점 하나 없이 고즈넉한 주택가가 이어진 타운은 창문을 열 때마다 맑은 새소리가 들려올 만큼 고요했습니다. 이곳에서 밤을 기다리며 잠시 근처 전망대까지 왕복 1km 남짓한 코스를 달리기로 했습니다. 20분이면 숙소로 돌아올 줄 알았건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그곳에 발이 묶여버렸습니다.
‘블루마운틴’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지게 되었을까 하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푸른 빛을 머금은 협곡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제법 큰 규모의 여행객 무리와 마주친 덕분에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하며 블루마운틴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푸른 공기의 정체는 바로 ‘유칼립투스 나무’였습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잎을 통해 분출하는 미세한 기름 입자들이 협곡을 가득 채우면서, 태양 빛을 산란시켜 공기를 푸르게 빛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밀을 알고 다시 바라본 협곡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대기 중을 가득 채운 유칼립투스의 거대한 생명력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협곡 위쪽으로는 낮인데도 밝게 빛나는 달이 떠 있었습니다. 남반구에서 마주한 첫 달이었습니다. 며칠 뒤가 보름이니만큼 북반구 기준으로는 오른쪽이 둥근 상현달이어야 했습니다. 예상대로 달은 180도 뒤집어져 왼쪽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눈으로 목격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마주한 뒤집힌 달은 꽤나 당혹스러웠고, 동시에 오늘 밤 관측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가장 익숙한 천체가 고작 180도 뒤집어졌을 뿐인데도 이렇게 낯설다면, 아예 새로운 별자리들이 뜨는 남반구의 밤하늘은 과연 어떤 감동을 선사할까요?
그러나 밤하늘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낮 동안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었건만, 밤이 깊어지면서 구름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호주에서의 첫날 관측이 이대로 무산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열정 역시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흘러가기를, 그 틈새로 단 하나의 별이라도 보이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때 거짓말처럼 구름 한 자락이 열리며 ‘남십자성’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화면 너머로, 사진으로만 보던 바로 그 별자리였습니다. 눈앞에서 실물로 마주한 남십자성은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신기하고 경이로웠습니다. 북반구의 인류가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이정표 삼아 방향을 잡았듯, 남반구의 인류는 이 남십자성과 센타우루스자리를 보며 길을 찾았을 것입니다. 선명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설렘을 안고 남반구 밤하늘의 또 다른 상징인 ‘마젤란 은하(Magellanic Clouds)’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흐려진 날씨 속에서 희미한 은하를 맨눈으로 찾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블루마운틴 전망대에서 아쉬운 첫 시도를 마친 우리는 구름이 흘러가도록 잠시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 구름이 어느 정도 물러갔을 무렵, 다시 한번 숙소 밖으로 나섰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한 가로등 불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찾은 관측 스팟에 도착해 열심히 밤하늘을 훑었지만, 마젤란 은하는 이미 지표면과 너무 가까워져 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카메라 렌즈 속에 희미하게 담긴 흔적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쉬움이 컸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무려 7일의 밤이 더 남아있습니다. 비록 곧 보름이기에 밤새 달이 하늘을 밝히겠지만 말이죠. 내일이면 우리는 호주의 중앙, 더 깊은 심장부로 들어갑니다. ‘국제 밤하늘 공원(International Dark Sky Park)’으로 지정될 만큼 세계적인 관측 환경을 자랑하는 ‘워럼벙글 국립공원’이 다음 목적지입니다. 그곳에서는 기어코 맨눈으로 쏟아지는 마젤란 은하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호주에서의 설레는 첫날 밤 관측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