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등불 뒤에 숨은 우주의 절기: 할로윈은 사실 ‘천문학의 날’이었다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지는 시기, 거리에 주황빛 호박 등불과 마녀 모자, 유령 분장이 넘쳐나는 할로윈 시즌입니다. 호박 속을 파내어 익살스러운 얼굴을 만드는 잭오랜턴과 간식 바구니를 들고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외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제 서양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무척 친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로윈을 그저 유령 분장을 즐기는 영미권의 대중문화 축제나 상업적인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유쾌한 축제의 가면을 한 겹 벗겨내고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흥미로운 천문학적 사실과 고대인들의 달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실 할로윈은 귀신의 날이기 이전에,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며 만들어내는 계절이 만들어낸 ‘천문학적인 기념일’이었습니다.

할로윈의 호박 등불 ‘잭 오 랜턴’ (출처: Magnific)

1. 춘하추동 사이의 ‘사분점(Cross-Quarter Day)’

천문학에서 한 해의 계절을 나눌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점은 4개입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Vernal Equinox)과 추분(Autumnal Equinox), 그리고 낮이 가장 길거나 밤이 가장 길어지는 하지(Summer Solstice)와 동지(Winter Solstice)입니다. 이를 천문학에서는 분점(Equinox)과 지점(Solstice)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이 네 개의 커다란 마디만으로 한 해를 살아가기에는 단위가 너무 성기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춘분, 하지, 추분, 동지라는 네 지점의 정확히 ‘한가운데’에 위치한 날들을 한 번 더 짚었습니다. 분점(춘분과 추분)과 지점(하지와 동지) 사이를 반으로 쪼갠 이 지점들을 천문학에서는 ‘사분점(Cross-Quarter Day, 절기 간 중간점)’이라고 부릅니다.

1년 365일을 4등분하면 약 90일 간격이지만, 사분점을 포함해 8등분하면 약 45일 간격으로 훨씬 더 촘촘한 계절의 단위가 만들어집니다.

  • 2월 2일경 (성촉절 / 그라운드호그 데이): 동지와 춘분의 한가운데
  • 5월 1일경 (메이데이 / 벨테인): 춘분과 하지의 한가운데
  • 8월 1일경 (라마스 / 루나사): 하지와 추분의 한가운데
  • 10월 31일~11월 초 (할로윈 / 삼하인 또는 서윈): 추분과 동지의 한가운데

그렇습니다. 매년 10월 31일에 열리는 할로윈은 태양이 가을(추분)을 지나 가장 어두운 겨울(동지)로 내려가는 궤적의 정확한 절반을 지나는 날을 기념하던 천문학적인 날인 것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1년 비교

2. 켈트족의 ‘삼하인’: 여름이 끝나고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

할로윈의 직접적인 원류는 약 2천 년 전 영국과 아일랜드, 북프랑스 일대에 살던 고대 켈트족의 전통 축제 ‘삼하인(Samhain, 사윈)’에 닿아 있습니다. 켈트어인 삼하인은 문자 그대로 ‘여름의 끝(Summer’s End)’을 뜻합니다.

유목과 농경을 함께 하던 켈트족에게 1년은 단순히 4개의 계절이 아니라, 크게 두 개로 나뉘었습니다. 햇빛이 풍성하고 생명이 약동하는 ‘밝은 반년(Light half)’과, 춥고 삭막하며 밤이 낮을 압도하는 ‘어두운 반년(Dark half)’이었습니다.

삼하인이 열리는 10월 31일의 일몰은 바로 밝은 반년이 끝나고 어두운 반년이 시작되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켈트족은 해가 질 때를 하루의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에, 10월 31일 밤은 계절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한 해의 마지막 밤이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새해 전야’였습니다.

그런데 고대인들의 우주관에서 두 계절, 혹은 두 세계가 맞물리는 교차점은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의 경계가 가장 얇아지는 틈새였습니다. 빛의 계절에서 어둠의 계절로 넘어가는 삼하인의 밤에는 저승의 문이 열리고,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온갖 요정, 도깨비들이 인간 세상으로 쏟아져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악령에게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서운 동물이나 유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변장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아이들이 마녀와 괴물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할로윈 코스튬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즉, 유령 분장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급격히 길어지는 밤과 차가워지는 우주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빚어낸 행동이었던 셈입니다.

3. 동양의 24절기와 견주어 보는 할로윈: 상강과 입동 사이

흥미롭게도 이러한 계절 분할법은 서양 켈트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동양의 전통 천문학인 24절기와 비교해 보면 천문학적 유사성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동양의 24절기 역시 황도(태양이 하늘을 지나가는 겉보기 길)를 15도 간격으로 24등분한 지극히 과학적인 태양력 체계입니다. 24절기에서도 춘분·추분·하지·동지는 중심 뼈대를 이루며, 그 사이사이에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날짜를 대조해 보면 놀랍도록 들어맞습니다.

  • 10월 23~24일경: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霜降)
  • 10월 31일: 할로윈(Halloween)
  • 11월 7~8일경: 겨울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입동(立冬)

할로윈(10월 31일)은 동양의 절기로 보면 상강과 입동의 딱 한가운데에 걸쳐 있습니다. 가을 추수를 모두 끝내고 서리가 내리며, 곧 불어닥칠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곡식을 창고에 들이며 안녕을 비는 시기입니다.

실제로 천문학적으로 지구가 공전 궤도상에서 추분(황경 180°)과 동지(황경 270°)의 정확한 수학적 중간 지점인 황경 225°에 도달하는 순간은 현대 달력으로 대략 11월 6일~7일경, 즉 동양의 ‘입동’과 일치합니다. 고대 켈트인들이 관측했던 삼하인의 원형은 바로 이 입동 즈음이었으며, 로마 달력과 그레고리력으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편의상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로 고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양에서는 “겨울 채비를 시작하자”며 김장을 고민하던 그 절기에, 서양에서는 “어둠의 계절이 오니 불을 밝히고 영혼을 달래자”며 축제를 벌였던 것이죠. 형태는 달랐지만, 태양이 기울어지고 밤이 길어지는 우주의 신호를 읽어낸 방식은 동서양이 일치했습니다.

플레이아데스 성단 (출처: 나사, Hermann von Eiff)

4. 할로윈 밤하늘이 들려주는 이야기: 플레이아데스와 페르세우스

천문대 망원경 앞에 서는 연구원의 시선으로 할로윈을 바라보면, 밤하늘의 별자리들마저 할로윈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연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 켈트족의 사제들은 삼하인 축제의 밤이 되면 자정 무렵 밤하늘 꼭대기(자오선)를 통과하는 한 무리의 별들을 보며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바로 황소자리의 심장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Pleiades, M45), 우리말로 ‘좀생이별’이라 불리는 별의 무리입니다.

차가운 가을바람과 함께 10월 말의 자정이 되면, 푸르스름한 안개에 싸인 일곱 자매의 별 플레이아데스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걸립니다. 고대인들에게 이 창백한 푸른 별 무리의 고도는 이제 온 세상이 추위와 밤의 지배를 받게 되었음을 알리는 우주의 신호등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할로윈 밤하늘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스산하고 환상적인 전설을 품고 있습니다. 머리 위쪽을 올려다보면 괴물 메두사의 목을 벤 영웅 페르세우스자리가 떠오릅니다. 특히 페르세우스가 쥐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 위치에는 ‘알골(Algol)’이라는 유명한 별이 있습니다. 알골은 아랍어로 ‘악마의 머리(Ra’s al-Ghul)’라는 뜻을 가졌는데, 두 별이 서로를 가리며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식쌍성입니다.

또한 동쪽 지평선 너머로는 거대한 사냥꾼 오리온자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그 뒤를 따라 겨울의 눈부신 다이아몬드 별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할로윈의 밤하늘은 가을철의 희미하고 쓸쓸한 별자리들이 물러나고, 겨울철의 차가운 공기처럼 밝은 1등성들이 밤하늘을 점령하기 시작하는 전환기입니다.

5. 어둠을 긍정하는 우주의 지혜

현대 도시의 밤은 너무나 밝습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 속에서 우리는 계절이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 밤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잊고 살고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할로윈에 켜지는 주황색 호박 등불은 어쩌면 잊혀진 계절의 감각을 깨우는 작은 알람시계처럼 느껴집니다.

고대인들에게 다가오는 겨울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연이 숨을 고르고 다음 봄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휴식의 시간이었습니다.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씨앗이 차가운 흙 속에 묻혀 긴 어둠을 견뎌내야 하듯, 생명의 순환에서 ‘어둠의 반년’은 결코 부정적인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밤이 길어지는 그 문턱에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했을 것입니다.

이번 할로윈 데이에는 호박 사탕을 나누는 즐거움 너머로,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늘해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지구라는 푸른 행성이 태양 주위를 묵묵히 돌아 마침내 추분과 동지의 한가운데인 ‘사분점’에 도달했음을, 그리하여 우리 곁에 겨울이라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음을 밤하늘의 별빛을 통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호박 속 작은 촛불을 밝히는 그 순간, 저 높은 하늘에서는 138억 년 동안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지구라는 시계가 태양 주변을 멈추지 않고 돌고있습니다. 그 시계는 계절의 깊은 밤을 가리키고 있지요.